새로운 사고의 전환을 이끌어 냈다. 정작 먼 나라, 먼 시대 이방인이었던 우리는 아브라함이 단순히 많이 들어봐서 친근한 대표적 성경 인물로만 기억해서는 안 될 것이다.
본 논문은 아브라함의 꼬리표 ‘믿음의 조상’이 바울에게 어떻게 해석되는지 살펴볼 것이다. 우선 바울이 활동하던 시대적
대한 기독교 윤리학적 이해”, 장로회 신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5년 2월, 1쪽, 참조.
이 뉴에이지 사상으로 인하여 그 동안 교회에서 심어 주었던 기독 세계관, 기독 문화관, 기독 사회관, 기독 삶관 등이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리고 그들의 삶에 자신만이 최고라는 인식과 더불어 구원이
대한 강조가 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7)
b. 시몬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18a)
c. 죽음에 대한 승리의 약속이 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
대한 확고한 신념과 동시에 장로교 표준문서인 웨스트 민스터 신도게요와 대소 요리문답에 구현된 성경의 근본교리들에 대한 입장을 일관되게 변호했다. 박형룡 박사가 프린스톤 신학교에 유학한 1923년은 미합중국 장로교회가 소위 근본주의 대 근대주의 논쟁에 휘말려 있던 시기로 1910년 채택된 근본
해석”과 “역사적 해석”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불트만의 시도인 것이다. 예수에 대한 서로 다른 고백이나 선포들의 연결은 그것을‘하나님 앞에 선 사람의 자기이해’에로 환원시키려는 데서 비로소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 질문은 사진을 ‘신앙적으로’ 이해하려는 사람에게는 불변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