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위 계승 과정 자체부터 이미 그가 왕권을 확립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으며 게다가 정희왕후와 원상들에게 섭정을 받고 있는 처지였기 때문에 그가 왕권을 확립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즉, 이 때 성종의 왕권은 그야말로 땅에 떨어졌다 할 정도로 미약했다는 것이다.
을과로 급제하여 전적, 감찰, 예조좌랑을 역임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왕의 두터운 신임을 얻게 되었다. 그는 유교로써 정치와 교화의 근본을 삼아야 한다는 지치주의(至治主義)에 입각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역설하였다. 이와 함께 정언이 되어 언관으로서 그의 의도를 펴기 시작하였다. 이해
대한 종속으로 반원적 개혁정치가 필요하였고, 소수의 권문세족에게 토지가 집중되는 사전문제의 해결이 요구되는 시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교와 유교의 대립, 왕권과 신권의 대립 등 조선 전기의 정치의 특징을 각각의 상황에 맞추어 파악하고 그 당시의 상황에서 과연 효과적이었는지를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