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위 계승 과정 자체부터 이미 그가 왕권을 확립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으며 게다가 정희왕후와 원상들에게 섭정을 받고 있는 처지였기 때문에 그가 왕권을 확립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즉, 이 때 성종의 왕권은 그야말로 땅에 떨어졌다 할 정도로 미약했다는 것이다.
성종 19년에 충청도 문의현령까지 지냈으며 어머니는 장한필의 첩이었고 신분도 천민이었다. 조선시대에는 부모 중 한 쪽이 천민이면 자녀는 자동으로 천민이 되었으며, 그 자녀의 소유권은 모계를 따라 가도록 되어 있었기에 장녹수는 젊은 시절부터 가난하고 신분도 천한 여인이라 몸을 팔아서 생활
강화됨에 따라 의정부와 왕권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2. 비변사의 설립배경
사화와 붕당정치로 약해진 국방력으로 인해 남쪽왜구와 북쪽 여진의 침입이 잦았고, 그로 인해 조선성종 때부터 행해진 군사체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적의 침입보고를 받은 연후에 소집, 집
일파의
대윤
경원대군(명
종)의 외숙인
윤원형 일파
의 소윤파
세자(인종)의
외숙인 윤임
일파의 대윤
사이의 왕위
계승을 둘러
싼 대립
윤임 일파의
몰락과 연루
된 사림이
죽거나 유배
외척간의 대
립이 정쟁으
로 표면화
<출처 : 김경수(2008), 조선왕조사전 p179>
조선후기에는 왕권과 재상권이 약화되고 사림의 세력이 강화되어 군약신강(君弱臣强)의 정국이 되었다. 또한 삼국통일 이후로 한번도 정복왕조가 들어서지 않아 귀족세력이 강해지게 되었다. 이에 국왕과 재상에게 눌려 오던 사림들이 투쟁의 대상을 잃고 스스로 분열하여 당쟁이 치열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