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년 셉티미우스세베루스황제(193~211)에 의해 폐허가 되었으나, 330년 5월11일 콘스탄티누스황제(324~337)에 의해 수도로 축성되어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불렸다. 이때부터 콘스탄티노플은 제국의 정치적인 수도였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수도이기도 하였다. 395년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열됨으로써 후대인
상업상의 경제중심을 말하고 있어 도시는 정치·행정적 기능과 경제적 기능에서 출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서구의 도시 Urban의 어원은 라틴어의 Urbanu로서 중심 혹은 원을 이룬다는 말이며, 뜰, 마당이란 의미가 포함된 성곽 속의 정주공간을 뜻하여, 도시란 동서가 같은 의미를 지닌 인간의 거주지였다.
로마가 기원한 티베리나섬 부근은 테베레강 하구에서 약 25km 떨어진 곳에 있다.
시역의 동부에서는 알바노 화산군의 용암을 볼 수 있고 또 리도디로마·오스티아·피우미치노 등은 테베레강 하구부의 충적평야에 위치한다.
시민은 거의 시의 행정영역 안에 거주하고 있으므로 시역을 넘어선 도시권
동유럽에서 국가사회주의 혹은 현실사회주의라는 이론의 현실 적용은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적용되어졌다. 또 다른 물음에 대한 시작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과연 러시아혁명을 기점을 사회주의 국가가 형성된 구소련의 사회주의 사상과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우리는 이 지
로마제국의 정치적 붕괴에 뒤따른 게르만 민족의 이동이 서방세계의 도시와 상업을 거의 파멸로 몰고 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극히 제한된 범위이기는 하나 화폐는 유통되었고 도시민의 상공업 활동이 미미하게나마 존속되었다. 더욱이 중세 안정기인 10세기에 이르러 도시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