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이 게르만족과 훈족의 침략으로 황폐해지는 동안 동로마제국에서는 화폐경제가 유지되고 교역이 활발하여 서방보다는 훨씬 풍성한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서유럽에서는 교역과 도시생활이 쇠퇴한데 비해 콘스탄티노플은 교역의 요충으로서 무역의 중심지가 되어 경제적 풍요와 문화적
수 있는 것들은 다양하다. 에게해 연안에는 로마제국시대의 유적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고 비잔틴과 콘스탄티노플, 셀주크와 오스만 터키를 거쳐온 파란만장한 역사의 흔적들이 곳곳에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다. 거대한 돔의 이슬람 사원에선 알라를 외치는 경배소리가 높지만, 성모 마리아의 사도
Ⅰ. 중세미술
초기 기독교, 비잔틴, 로마네스크, 고딕미술 등 14세기까지 서양의 화가들은 대부분 예수나 성인의 일생과 같은 기독교적인 주제를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종교화를 더욱 성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화가들은 풍부한 색채와 금도금을 이용해 그림을 그렸는데, 오늘날에는 단조롭게 보일지도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로 개명)으로 옮긴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시대를 비잔틴제국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이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죽고 AD 395년 제국은 동과 서로 나누어진다. 서로마제국에서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475~476)가 폐위되었을 때도, 당시 동로마황제인
그리스도나 성모를 판자 위에 예배의 대상으로 그린 이콘(Icon)(휴대 가능한 나무판에 그려진 그림), 즉 성상화가 그려졌는데 템페라나 납화법으로 나무에 그려진 호화로운 이콘들은 작은 모자이크 타일로 대체되면서 더욱 화려해졌다. 특히 황제의 선물로 사용되기 위해 디자인된 이콘들은 값비싼 금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