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스트로, 그리고 다시 민족주의자의 행보를 걸은 박열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래서 박열을 민족주의를 위해 아나키즘을 택한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는 <박열평전>과 하지만 그의 아나키스트적 일면을 보여주는 가네코후미코와의 관계를 알 수 있는 <가네코후미코평전>으로 분석해 보고자
Ⅰ. 서론
재일조선인은 개항이후부터 일본에 거주한 조선인을 의미한다. 개항 이전의 시기에도 일본에는 조선인이 거주하였으나 이들은 조선인으로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인으로서 생활해야만 했다. 따라서 재일조선인의 역사는 개항부터 시작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개항직후에는 정치가
아나키스트들의 권력과 권위에 대한 배척은 무조건적이고 막연한 것이 아니라, 합법적인 명목으로 권력과 폭력을 독점하고 있는 국가권력 기관의 철폐를 통해 압제와 착취로부터 해방하여 자유와 정의, 평등 우애를 실현하고자 하는 해방정신의 표현이다.
Ⅱ. 아나키즘(무정부주의)의 정의
소쉬
Ⅰ. 1910년대의 독립운동
노령 연해주는 만주와 더불어 1910년대 ‘독립전쟁론’에 따라 국외 독립운동기지화가 추진된 독립전쟁의 주요 거점이었다. 대표적 한인단체인 勸業會는 1914년 러시아 국내에서 ‘제2러일전쟁’설이 팽배한 가운데 大韓光復軍政府의 설립을 주도하였다. 대한광복군정부는 노
Ⅰ. 1910년대의 독립운동
미주한인사회에서 박용만 등이 제기한 ‘정부’수립론은 국외 독립운동기지화의 핵심 거점인 노령 연해주 지역에서의 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864년 이후 형성되기 시작한 노령 연해주의 한인사회는 1910년의 ‘합방’까지 20여만 명을 헤아렸다. 이들은 황무지 개척과 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