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개요
한국의 초기 농경문화에서 주목되는 것은 처음 ‘조’, ‘피’와 같은 잡곡을 주작물로 하여 출현한 우리 농업이 점차 ‘벼’, ‘콩’, ‘팥’, ‘수수’ 등으로 다양성을 추구했었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주작물인 ‘벼’가 등장한 것은 그 동안 발굴된 벼의 유물들로 보아 대략 기원전 2천
논을 단순한 돈벌이수단이나 건물을 지을 땅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 낸 최고의 건축물이자 최고의 생태적 공간으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논이 지역 주민들의 삶에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하면, 쌀 또한 우리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벼농사를 짓지 않는 논은 버려진 논이고, 논의 기능을
가격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거대한 면적의 논에서 재배하는 쌀 수출국들의 기업식 영농과 우리나라의 농민들이 소규모의 노동력으로 좁은 면적의 논에서 하는 영세 영농은 가격 면에 있어서 절대로 경쟁이 될 수가 없다고 농민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 경제적인
농사하면 떠올리게 되는 모내기는 고려시대에 처음으로 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바. 5,000년이라는 농업의 역사로 볼 때 개발된 지 1,000년 된 비교적 최신 기술로 볼 수 있다. 벼 직파법은 쌀의 품질, 잡초제거, 균일한 생육 등의 이유로 현재는 대부분 모내기법(이앙법, 移秧法)으로 대체된 형편으로 논
노동에 의해 생산되는 쌀과 경쟁에서 이기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 속에서 2005년 이후 국내생산을 단념하고 수입을 자유화하여 완전히 시장논리에만 맡기게 된다면, 이는 한국쌀을 안락사 시키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식량 문제는 남으면 적게 생산하고 모자라면 당장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