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에서 민족국가구성원을 통합시키는 중심가치를 형성하여 보편적 가치로 전환시키고자 노력하였다. 일단 그러한 정체성과 일체성이 기초가 잡히면 집단적 저항과 집단적 반란이 발생하더라도 집단적 학살은 피하고 그 책임자를 개별적 차원에서 책임을 물어 처벌하면서도 그 저항운동에서 제기한
민주세력 어느 쪽도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는 힘의 교착 상태, 권력의 공백상태가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와중에 12.12 쿠데타를 통해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이었던 정승화를 박정희 살해사건 관련자로 지목해 그를 구속하고 군부를 장악한 후, 권부의 핵심으로 등장한 신군부는 허수아비와 다
)되었고 내무부 장관과의 대화를 통해 안전귀가를 보장받는 대신 학교로 퇴각할 것을 결정하게 되었다.
이래 서울지역 대학가가 잠잠한 가운데 16일 발생한 지방 23개의 대학의 시위참여자가 3만명인데, 그 중 2만명이 광주지역의 참가자였다는 사실은 광주를 타깃으로 하게 된 이유로 충분했다.
성경을 접하게 됨으로써 올바른 정보를 얻게 되었고 교회를 새롭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옳지 못한 정보로 그 매체를 접한 대중들에게 악영향과 그릇된 정보를 제공 할 수도 있다. 그 예로 5.18광주사태를 들 수 있는데 당시 언론의 왜곡과 침묵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아야 했다.
과정이나 성격은 역사의 평가에 맡겨야 한다’고 말하며 은근한 자신감을 내비쳤었다. 그러나 정작 훗날 김영삼 대통령은 ‘성공한 쿠데타라도 내란죄로 벌하겠다’고 말하며 그를 향해 서슬 퍼런 칼날을 뽑아 그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국가원수가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는 비참한 지경에 이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