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불만이 쌓인 전국의 학생 연대는 1980년 5월 15일 서울역에 모여 대규모 민주항쟁 시위를 벌였다. 신군부는 이를 기회로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였다.
전라남도 광주시에서도 역시 비상계엄군이 각 대학을 장악하고 학생들의 등교를 저지하였다. 이에 울분한 전남대학교
것이 ‘4.3은 말한다’(전예원 刊)이다. 이 책은 구술증언집이 아니라 기록과 구술증언을 포함한 자료들을 가지고 기자들이 4.3에 대한 새로운 역사쓰기를 시도한 것이었다. 구술증언은 기록이 없는 경우에 사건 전개의 필요에 따라서 인용됐으며, 구술의 재현, 즉 제주도 방언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그 근거는 두 가지 차원에서 확인된다. 첫째는 적극적 미래지향적 전망에서 볼 때, 봉기시의 자치공동체에서 실현되었고 5월 운동에서 추구했던 민주화의 진전은 우리사회에서 아직도 요원하다는 사실에 있다. 두 번째는 5.18특별법 자체가 그 성격에서부터 한계를 가진 것이어서 반인륜적 학살만행을
그것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승인투쟁(Struggle for Recognition) 혹은 절대적 공동체로 개념화하고 있다(한상진 1998).
셋째, ‘주민들의 참여과정에 대한 연구: 왜 그리고 어떻게 주민들이 참여했는가?’이다(최정기 1997). 최근에는 왜 광주에서만 승인투쟁 혹은 절대적 공동체의 형성이 가능했는지에 대한
우리는 행복을 찾기 위해 늘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 말은 즉 살아가고 있는 현재가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현재에 내가 불행하기에 행복을 계속해서 갈망하는 것이다. 책이 말하는 것처럼 현재에 내가 행복하길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행복할 수 있다. 이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