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솔가뿐만 아니라 散花歌도 가창되었음이 일연(一然)의 기록을 통해서 입증되고 있고, 또 이 문다부재(文多不載)라 한 산화가(散花歌)는 이름이 전해오지 않는 타(他)의 인도승(引導僧) 혹은 어느 범패사에 의해서 창영되었음이 이미 밝혀진 바 있다. 문제는 산화가와의 관계에 있어서 도솔가는 과연
오도록 양식화되어 있다. 대다수의 학자는 향가가 4구체에서 8구체를 거쳐 10구체가 되었다고 하는데, 4구체와 8구체는 각기 다음단계의 양식으로 대체되어 소멸되지 않고 공존하며 창작되었다. 4구체의 도솔가가 경덕왕 19년에 지어졌고, 8구체 도이장가가 예종의 손에서 지어진 것을 보면 그러하다.
라서 화랑과 승려는 향가의 주 작가층이었다. 작가가 화랑이자 승려인 경우도 드물지 않은데, 〈혜성가〉를 지은 융천사(融天師)는 화랑의 지도자였던 승려이다. 〈도솔가〉?〈제망매가 祭亡妹歌〉를 지은 월명사(月明師)는 피리를 잘 분 예능인이며 국선(國仙)에 속하는 승려이다. 〈찬기파랑가 讚耆
물었다. 서동이 이로부터 인심을 얻어 백제의 왕위에 올랐다.
[정리]
-연대: 신라 진평왕 때(579년~632년)
-작자: 백제 제 30대 무왕
-성격: 민요, 동요, 참요(시대적 상황이나 정치적 징후 따위를 암시하는 민요)
-주제: 연정
-의의: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향가, 향가 중 유일하게 동요로 정착된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