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등이 시작되며, 한글맞춤법통일안 보급회가 조직되어 활동을 시작한다. 1936년부터는 가로 풀어쓰기 운동이 시작되었는데, 이 운동은 원래 1914년 경 주시경이 주로 주장한 것으로 이전까지 있었던 여러 의견을 종합한 안이 임시 안으로 채택되기까지 한다.
2-1. 조선어학회국어연구 및 국어
조선어학회’에서 당면 방침을 정하여 국어 교과서 편찬, 국어 교원 양성, 한글지 속간, 국어사전 편찬 완결 등의 정책을 펼쳐 나갔다.
교원 양성과 교과서 편찬은 우선 국어 강습회를 통한 철자법 교육을 시행하고, 39명의 국어 강사를 전국에 파견하였으며, 맞춤법통일안이 남북에 일시에 보급되면
운동’을 광범위하게 실천하여 고유어에 바탕을 둔 우리말의 개발에 힘을 쏟았다. 북쪽은 문화어에 기반을 둔 문법과 사전을 다시 편찬하여 국어교육은 물론, 언어생활 전반을 통제하고 있다. 북쪽은 사변전에는 그들의 어문연구단체였던 조선어문연구회를 중심으로 언어문제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기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한글학회의 전신)를 창설함으로써 1933년 드디어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제정, 맞춤법의 과학적 연구가 결실을 보게 되었다. 198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저서로는 「국어문법」「월남망국사」「한문초습(漢文初習)」「국어문전음학(國語文典音學)」「
사전들이 간행되면서 사전끼리 표준어 규범이 서로 달라지기 시작했고 이에 정부가 나서서 ‘표준어 규정’(1988년)을 고시함으로써 공식적으로 표준어를 개정하였다. 그러나 이것 역시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의 경우처럼 2,000개도 안 되는 소수의 말만을 다룸으로써 완성의 몫은 다시 국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