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한 농촌선비
1887년 충북 청원군 귀래리로 이사 이후 서당훈장을 하던 조부아래 수학하고 성장함
1898년 성균관 입교, 독립협회 운동에 참여. 한편으로 유학을 공부하고 한편으로 중국이나 일본에서 입수된 신서 개화사상을 공부, 개화자강론자로 변모
1901년 <문동학교>에서 교육계몽운동 전개
발표
<독립신문>사장으로 취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에 취임. 대통령대리를 겸직.
임정의 제2대 대통령으로 선임
1925년 11월 1일 , 향년 67세로 서거
의의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최초로 종합적으로 서술
민족주의 사관이 깊이 반영된 역사책
근대사 연구에 중요한 문헌적 가치
전통사회에 대하여 큰 충격이 가해진 시기였다. 이로 인해 대내외적인 위기의식이 고조되었고 오페르트 남연군묘 도굴사건을 계기로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은 더더욱 강화되었다. 1870년대 들어 개화론자들의 개화자강론, 개화사상이 등장하게 되었고 1880년대 들어 개화세력과 이에 반대하는 위정척사
한국문학통사4』, 지식산업사, 2003, 277쪽)
, ≪경향신문≫ 천주교회에서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발간한 순한글 표기의 신문으로 약 40편의 애국·독립가가 실려 있다.
의 애국·독립가 두 유형이 있는데 각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독립신문≫의 애국·독립가
• 관념적 자주독립과 맹목
신채호 선생과 박은식 선생의 노력에 힘입어 우리 민족에게 민족의식을 다시금 부활시켜 주었던 이러한 사상은 식민주의 사관을 해소시키는 데 가장 특효한 약이 될 수도 있는 반면 그의 역기능 또한 엄존한다. 바로 민족의식에 지나치게 경도된 민족주의이다. 이것은 민족지상주의적 위험이 크기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