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왕권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서 그 성립과 전개 및 변천과정의 해명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신형식은 기존의 학자들이 전제정치의 특징으로서 김씨왕족의 족내혼, 장자상속, 연호제 등을 들고 있지만, 이러한 현상들이 통일이후에 나타나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것들을 곧 중대 전제왕권의
시대의 남쪽 축이 되었다.
통일 이후 신라는 9주 5소경을 설치하고 고도의 중앙집권체계를 확립하였다. 집사부 장관인 시중의 권한이 강화되어 왕권의 전제화가 실현되었다. 신문왕은 녹읍을 폐지하였으며, 유학 교육을 위해 국학을 설립하였다. 진골 귀족과 대결 세력이었던 득난세력(6두품)이 왕권과
통일신라시대는 한국사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시기로 생각된다. 초기 계급사회로부터 봉건제 국가로의 이전 과정이 바로 이 시기에 완수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왕권이 강화되고, 지배계급의 형성과정이 완결되며, 지배층에 의해서 구성된 국가관료제가 완성되고, 씨족제도의 잔재들이 어느
1. 서론
고문서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삼국시대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왔던 동아시아 국제관계의 키워드는 ‘조공(朝貢)’과 ‘책봉(冊封)’의 두 단어이다. 삼국시대부터 19세기 말까지 지속됐던 이러한 관계는 과거의 모든 대외관계를 관통하며 큰 족적을 남겼다.
신라(新羅)가 삼국을 통일하고
세력의 축출과 698년 고구려 고지에서 발해의 건국 등 일련의 연대기적 사실이 점철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후대의 역사인식은 ‘신라의 삼국통일’ 또는 ‘신라의 반도통일과 발해의 건국’등으로 정리되고 있다. 이번 발표에서는 바로 이러한 인식에 대한 재검토의 기회를 갖고자 한다.
Ⅱ. 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