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이 북부지방출신이 많은데 비해 재일조선인의 출신 지역은 남부지방에 집중되어 있다. 이주 목적도 정치적인 목적이 아닌 노동이나 학업이다. 물론 정치적인 목적의 소유자도 있기는 하지만 그 비중은 매우 미미하다. 초기에는 순수하게 학업만을 목적으로 도일하는 유학생의 비중이 높았으나
조선인이 일본에 건너갔다고 한다. 1880년대 이후 탄광노동자, 철도공사 노동자, 행상인 등이며, 러일전쟁(1904-1905)후에는 수천 명의 규모로 늘어났다고 한다. 물론 지금의 재일동포의 형성에 있어서 일본의 식민지지배가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재일동포 형성의 기점은 1910
재일교포 2,3세가 우리말을 거의 하지 못한다는 데 또 한 번의 충격을 받았다” 고 하면서 이 모임에 참가하게 된 배경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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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재일한인(재일유학생, 재일한국인, 재일조선인)의 생활상태
재일조선인은 거의 대부분이 도일이전에 농업에 종사했다. 이
ㄷ. 의생활
조선인 여성노무자들이 가장 많이 간 후지코시 공장과 마쓰비시 공장, 누마즈 방직공장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후지코시 공장에서는 작업복과 모자를 쓰고 회사 수첩을 윗옷 주머니에 넣은 채로 일을 했다. 미쓰비시회사로 동원된 전남출신 여성노무자들은 도덕 공장에서 작업복과
단체의 노력으로 적지 않은 진전이 있었지만, 지문날인(指紋捺印) 제도와 공무원 채용 시 국적조항(國籍條項) 등 아직도 재일조선인의 법적 지위에 관한 문제는 한일간의 현안으로 남아 있다. 생활방식으로나 의식적으로 조국과 단절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사회로부터도 소외된 교포 2세, 3세의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