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은 1905년에 백담사에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으며, 이곳에 기거하며『조선불교유신론』과 『십현담주해』 등을 집필해 불교유신과 개혁을 추진하였다. 또한 『님의 침묵』을 집필하기도 하였다. 현재 백담사는 기존 건물 이외에 이러한 만해의 불교정신과 문학사상을 구현하기 위한 만
불교계 혁신에 헌신하다 1944년 6월 29일 심우장에서 입적하였다.
2) 만해 한용운 연보
-1879 8월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한응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남
-1905 1월 백담사에서 승려 입문
-1907 블라디보스톡 일본 등지를 여행 세계사의 변화를 파악함
-1910 한일 불교 동맹 체결 분쇄 만주 망명 후
개화이론가였던 양계초의 음빙실문집을 읽고 더 넓은 세계관을 가졌을 것이다. 여담으로 결혼 한지 얼마 안 되어 돌연 집을 나왔다는 점과 가난하고 자신의 아버지가 하급관리였기 때문에 동학농민군으로부터 빼앗아온 양곡의 일부를 생활수단으로 삼아야 했던 자신만의 상처가 있었다는 점으
백담사 김련속에게 득도, 전영제(영제선사)에 의하여 수계하고, 4월에 『기신론』,『능엄경』,『원각경』등을 수료하였다.
1908년 4월 일본 경도, 동경 등지를 여행하면서 신문물을 배우고 동경의 조동종 대학(현재 구택 대학)에서 불교와 서양 철학을 청강하고 10월에 귀국한다.
1912년 불교 경전을 대중
만해 한용운은 한국 근대사가 내포하고 있던 모순과 문제점을 첨예하게 파악하고 실천적으로 극복하려고 노력한 민족적 선구자인 동시에 전통의 창조적 계승을 성취함으로써 문학사의 전환을 보여 준 신문학사 최대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만해 한용운의 불교사적 공적은 그가 [조선 불교 유신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