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서 사회과학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시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추상적인 세계인식이 아니라 생활의 구체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남주는 또 몰가치적이니 가치중립적이니 하는 객관주의자의 입장에서 현실을 나타내지 않았다.
Ⅱ. 김남주시인의 연보
- 1946년(1
시기부터 한국 현대문학사의 전면에 등장하였다.
2. 제 2절 서사적 공간과 황폐한 삶
(1) 전후소설의 가능성
한국 현대소설은 195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부터 전쟁의 충격과 사회적 혼란에서 점차 벗어나 관점과 방법의 균형을 되찾게 된다. 김동리, 황순원과 같은 기성 문단의 작가들은 새로운 작품
시인 에펜도르프(Eppendorf)에서 출생하였다. 그가 4살 때, 사회공산당원인 그의 아버지가 SS(나치돌격대원)에 의해 체포되었다가 1년 후 석방되어 남은 일생을 실업자로 살았다. 그는 1월 31일 새벽 4시로 그 아픈 고통의 시간을 기억하고 있다. 자기 방의 열쇠구멍을 통해 아버지가 구타당하는 모습을 보았
작품 활동 재개. 그 사이 농사, 공사판 노동, 광산일, 친구따라 장사를 하며 돌아다님.
1967 (32세) 동국대 문리대 영문과 졸업장을 뒤늦게 받음
1973 (38세) 시집 『농무』출간 (자비출간)
1974 (39세) 『농무』증보판 출간 (창작과 비평사)
제 1회 만해문학상 수상
1977 (42세) 평론집 『문학과
시대와는 다른 의미에서 종말에 대한 인식을 사실적으로 하게 되었고, 진보적 사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본격적으로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1990년대는 새로운 세기에 대한 예술적 전망이 불확실한 시기였다. 미래의 출구를 찾지 못하는 불안감, 위기감, 허무감 등이 퇴폐나 죽음 등이 미학과 결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