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의 기점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한국에서 근대화의 기점에 대한 논의는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루어지고 있는데, 학자마다 역사를 보는 관점에 따라 그 기준도 천차만별이며 따라서 시기와 그 내용이 모두 다르다. 그러나 기준이 뚜렷하고 그것을 적용하는 데에 일관성이 있다면, 일단은 어느
한국 여성사회의 근대성의 지표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단발이었다. 모던을 ‘모단’으로 표현할 정도로 단발은 한국근대화의 상징적 행위였으며 근대적 자아정체성의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어떤 여성이 어떤 이유로 단발을 했을까? 처음 단발을 실천한 여성은 기생이었다. 강향란은 기생 출신
서구적 근대성의 보편적 측면을 담지하면서도 또 다른 측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근대성의 내용이 서구의 그것과 동일하거나, 근대성의 배치가 서구의 그것처럼 단일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문제는 한국의 식민지체제의 구체적 현실로부터 기인한다.
유선영은 근대화와 독립이라는 현
근대의 근본정신과 모순이 생겨난다. 즉 서구의 문물이 일본을 통해 굴절되어 비판 없이 그대로 수용되었고, 그 상태에서 20세기 전반의 우리 역사가 흘러갔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근대시기에 대해 말할 때, 서구화와 식민지화라는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까닭에 한국에서 근대의 기
문화등 모든 분야에 걸쳐 폭압적인 식민정책을 펼치게 된다. 이 당시 통치의 폭압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 갑오개혁 때 폐지된 조선태형령을 부활시켰다는 것이다. 또 이시기에는 수많은 단체가 해산되었다. 1911년 신민회를 해산시킨 105인 사건이 대표적이다.
한편 강점 초기 일제의 주목적은 땅을 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