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비문을 통해본 고구려
(천하관 세계관)
광개토대왕비문의 내용을 분류하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추모왕에서 광개토왕까지의 세보(世譜) : 이 부분은 서언(序言)격으로 고구려의 건국 내력과 왕계(王系)에 관한 기록으로서 추모왕(동명성왕)이 ‘천제(天帝)의 아들이요 하백(河伯)의
광개토왕비문의 세계> p255~256
Ⅲ.광개토왕비에 보이는 정복활동과 대외관계
1.정복활동
광개토대왕은 위대한 정복군주인 동시에 유능한 통치자였다. 광개토대왕대 고구려의 정복전쟁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실질적인 농경지의 확보와 민호의 획득을 통한 국력배양에 있었음은 물론이지만 전제
말해서 임나일본부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일본의 역사왜곡> , 홍윤기, 학민사, 2001
(2)-1 광개토대왕비문 해석
광개토대왕비는 고구려의 광개토왕의 왕릉 비석이다. 현재 만주땅 압록강 중류의 북쪽 기슭인 집안에 그 비가 있다. 이 비석은 높이 6.34미터에 너비 1.4~1.9미터에 이르는 큰 바
위시한 가야 제국이 언제부터 야마토왜와 정치적인 목적의 교섭을 갖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에 대한 시사적인 내용이 <광개토대왕릉비>에 보인다. 이 비문에 의하면 400년과 404년에 왜가 한반도에 침입하여 고구려와 싸운 것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지리적으로 보아 야마토왜가
4면에 당시 유행하던 연서체로 1,775자 ( 동남 1면 11행 449자, 서남향 2면 10행 387자, 서북향 3면 14행 574자, 동북향 4면 9행 369자 ) 에 달하는 비문을 새겨 넣은 것이다. 글자의 규격은 크기가 고르지 못하여 큰 것은 길이가 16cm, 작은 것은 약 11cm 정도인데 일반적으로 14-15cm 정도 크기의 글자로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