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징은 오랜 기간 메이저의 양산시스템을 지속시켜주었는데 쇼치쿠 서민극의 전통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1951년 베니스영화제에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이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부터 일본영화의 국제화가 시작되는데 미조구치 겐지의 <서학일대녀>,<우게츠이야기>,
가부키와 노 등 전통적인 재현 양식을 통한 일본만의 독특한 영화 양식을 개발.
초기에는 온나가타(女方)라고 해서 가부키처럼 남성이 여성 역할까지 다 하다가 1920년대 초에 비로소 여자배우 등장.
1912년 '닛카츠(日活=일본활동사진)'를 건립하여 대형 메이저 영화사를 중심으로 한 시스템 탄생.
도쿄 출생.199년9월6일 사망
미술 학교에 다니면서 서양화를 그리기 시작. 권위있는 미술상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화가가 되겠다는 야심을 버리고 1936년에 PCL영화사의 조감독됨
구로사와는 뛰어난 시나리오 작가로 알려졌으며 그의 작품 가운데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고 잡지에만 발표된 몇 편
일본사회에 있어서 영화는 최첨단 서양문화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최대의 관심거리가 되었다.
일본인이 최초로 촬영한 영화는 1898년 도쿄의 어느 사진관에서 근무하던 사람에 의해 제작된 단편영화인데 일본적인 전통예술요소가 그대로 녹아 들어가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한 경
일본영화는 정부의 철저한 통제 아래 들어가 침략전을 합리화하고 전의를 고취하는 도구로 전락하였다. 이와 같은 암흑기를 통해서도 패전 후 크게 빛을 보게 되는 구로사와 아키라, 기노시타 게이스케가 신진감독으로 등장하였다.
<라쇼몽>을 세계에 알림으로써 국제적인 명망을 얻게 된 구로사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