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대한 새로운 조명과 정당한 평가는 영미의 경우에도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시도되었다. 이는 존 단을 위시한 17세기의 형이상학파 시인을 새롭게 재평가한 엘리어트에 의하여 제기되었는데, 엘리어트는 존슨의 문학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작품의 전체에 지적인 몰두”(148)가 필요하
것을 강조했던 급진적인 시의 유파를 가리키는 말이다. 1930년대 모더니즘시인들의 시에는 두 가지 기본적인 흐름이 있다. 이것은 서구 모더니즘이 지닌 두 흐름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하나는 정지용이나 김기림, 김광균 등으로 대표되는 영미 주지주의와 이미지즘을 지향하는 계열이라면, 다른
영미계 주지주의를 소제목으로 대립시키고 있어, 그 혼란은 정리되지 않는다.
김윤식 교수는 모더니즘이라는 개념 아래 이미지즘, 주지주의를 하위 개념으로 두고 있다. 그리고 영미문학에서 20세기 문예사조가 이미지즘으로 시작하여, 1920년 이후에 주지주의가 이어진 것으로 파악한다. 그러나 그는
100인을 선정하였는데,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자로서 그 목록에 오른 유일한 인물입니다. 이 사실만 보아도 20세기 철학에서 그가 차지하는 독보적인 위치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처음 읽는 영미 현대철학, 15p-
비트겐슈타인이 분투했던 철학적 문제는 그가 혐오했던 우리의 시대를 지배하는
시민생활과 관련된 일체의 도시업무를 총괄하였다. 그리스의 철학자들도 이들을 국가의 안전보장에 대한 최종책임자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경찰개념은 중세시대인 14세기 말에 이르러 프랑스의 policia에서 파생된 police라는 용어를 사움하면서 '국가가 행하는 일체의 작용'과 '국가목적 또는 국가작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