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틴의 마음을 세차게 뒤흔들어 놓았다. 복음의 권고대로 자기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주님을 따라나선 수도승들의 삶에 비해, 아직도 엉거주춤 망설이고 있는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괴로워서 무화과나무 밑에 홀로 주저앉아 울음보를 터뜨리며 『언제까지, 언
어거스틴의 사상을 연구하는 일의 가치성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거스틴은 그 이전의 다른 어떤 사람이나 그 동시대 사람들보다도 기독교 신앙을 모든 사람에게 보편 타당한 도덕적 종교적 규준에 근거된 기독교적 삶으로 설명하고, 그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4-5절), 주님과 하나 되어 주님의 인도를 받아 한 사람도 실족하거나 잃지 않는 교회(6-12절), 진리로 거룩하게 되어 악에 빠지지 않는 거룩한 교회가 되자고 다짐하게 되는 구절이 있기 때문이다(13-26절).
(7) 제 7주 : 승천주일
(행 1:6-14; 마 28:18-20)(요 20:19-23; 시 47;
사물이 그것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그는 또한 신을 순수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나는 나다"(출애 3,14)라는 신명에서 신의 본래적 이름을 보았고 이로써 신을 `존재 자체`로 표시하는 중세적 전통을 확립했다.
Ⅱ. 아우구스티누스(성 어거스틴)의 이력
주님이 실제 인물을 사용하지 아니하시고, 비유로 말씀하셨다는 점에 있다.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닮은 아버지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비유로 말씀 하셨다.
1. 가정적인 하나님
1) 아비와 어미 같은 모습으로 자신을 표현 하셨다.
시 103:13-14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