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떠나가는 배
떠나가는 배
박용철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구인들 손쉽게야 버릴 거냐.
안개같이 물 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 사랑하는 사람들.
버리고 가
문단 활동을 활발히 벌였고, 1939년 첫 시집 「와사등(瓦斯燈)」을 출판한다. 이어 1947년 두 번째 시집 「기항지(寄港地)」를 출간하였다.
1950년에 625 사변이 일어나자 사업을 하던 아우 익균이 납북되었고, 14후퇴 당시 부산으로 피란하여 초량동에서 살았던 광균은 1951년에 아우 익균이 경영하던 건설실
문단에 데뷔하여 활동하게 된다.
1950년 6·25전쟁의 발발과 함께 교사직을 그만 두고 마땅한 직업없이 전전한다. 51년 부산으로 피란을 간 후 그의 일생에 큰 영향을 준 이른바, ‘후반기(後半期)’ 동인들과 조우하게 된다. 이들의 만남은 ‘후반기’ 동인의 조직과 결성으로 이어지는데, 이때의 동인들
문단에 데뷔하여 활동한다. 50년 6·25전쟁의 발발과 함께 교사직을 그만두고 마땅한 직업이 없이 전전하다가 51년 1월 부산으로 피란을 간 후 그의 일생에 큰 영향을 준 ‘후반기’동인들과 조우. 그들의 만남은 ‘후반기’동인의 조직과 결성으로 이어지는데, 이 때의 동인들로는 조향·박인환·김차영·
서정주, 오장환 등과 「시인부락」의 동인이 되었고, 그 이듬해에는 오장환, 윤곤강, 이육사, 이병각, 서정주, 김상원, 이성범 등과 함께 자오선 동인을 결성하여 동인지 『자오선』을 출간했다.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설야」가 당선되면서 문단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를 확보하기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