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독일인과 일본인이 무대에 등장하면서 타클라마칸과 고비 사막에서 고대 불교 유물을 발견하려는 이른바 국제적 경쟁의 막이 올랐다. 그것은 사반세기 동안 계속 되었고, 끝나갈 무렵에는 모두 7개국의 고고학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이 가져온 방대한 양의 유물은 유럽, 미국, 러시아, 극동의 30
펠리오(P. Pelliot)에 의해 13세기 마르코 폴로(Malco Polo)도 통과한 곳이기도 한 옛 서역통로의 관문으로인 중국 감숙성(甘肅省)의 돈황 천불동에서 필사본으로 발견되었다. 한 권의 두루마리로 된 필사본은 책명과 저자명이 떨어져 처음에는 그 정체를 밝히는 것이 어려웠으나 불교 경전 어휘 주석집인 혜
펠리오(Paul Pelliot, 1878~1945)가 간쑤 성 둔황의 막고굴 장경동에서 당시 장경동을 지키던 왕위안루에게서 구매한 7000점의 유물들에 섞여 있었으며 현재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여행 경로))
신라에서 광저우를 거쳐 바닷길로 인도에 다다랐다. 사대령탑 등의 모든 성적(聖蹟)을 순례하고 오천
펠리오(P.Pelliot)가 책명과 저자명이 떨어진 상태의 잔간(殘簡) 일부 또는 대부분이 흩어지고 남은 문서
으로 발견되었는데 왕오천축국전은 동서교류사(東西交流史) 연구에 귀중한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혜초는 밀교승으로 기우제를 지내는 등 주술적 특성을 보이고 당대 최고의 밀교승 금강지나 불공
이 책에는 타클라마칸의 열악한 자연환경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신념을 위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고 탐험에 나선 6명의 탐험가들이 나온다. 스웨덴의 스벤 헤딘, 영국의 오렐 스타인, 독일의 폰 르콕, 프랑스의 폴 펠리오, 미국의 랭던 워너, 일본의 오타니 백작의 탐험단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