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 들여왔으며, 이벽, 이승훈, 권일신, 정약용, 정약전, 정약종, 이가환 등은 명나라 학자이며 천주교도였던 이지조의 서책에 의해 천주교를 접하게 되었다. 천주교에 대한 이러한 긍정적인 분위기는 천주교 실천 운동을 시작하게 하였다. 이로써 조선후기에 유,불,도교적 문화인 우리 나라 전통 문
조선후기의 개화사상(開化思想)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이 발표에서는 천주교의 수용과 발전과정, 그리고 그들이 받았던 박해를 살펴보면서 천주교의 수용이 조선사회에 끼친 영향들을 다루고자 한다.
2. 초기 천주교의 전래와 수용
1) 천주교서와 조선인의 만남
전통적 유교사회인 조선에 천주
조선시대의 국가·사회조직에 대하여 결정적인 개혁을 일으키지는 못하였으나, 많은 지식인에게 전통적인 성리학(性理學)에 대한 자기반성을 하게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또 조선후기의 개화사상(開化思想)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이제 천주교의 수용과 발전과정, 그리고 그들이 받았던 박해와
. 그러나 천주교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만민평등 이론을 이야기 하였으며 이것은 당시 유교사회의 집권자들에게는 마치 사회주의가 막 태동했을 때와도 같은 사회의 근간을 흔들어 버릴 만한 사상이었다. 『조선후기 유교와 서학』 금장태, 서울대학교 출판부
성교요지의 목적
것이었다. 그것이 제국주의의 시초가 되었다. 서양 열강들의 개척 시장의 대상은 멀리 있는 약소국들이었고, 아프리카와 아시아가 그 초점이 되었다. 조선의 주변 국가였던 일본과 믿었던 중국마저 힘으로 서양 열강들에게 굴복하고 문을 열었던 국제 정세 속에서 흥선군 이하응이 대원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