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서로 쓰였는데 16세기 초 이래 시대적 간격을 두고 여러 번 중국어 원문의 개정과 개정된 중국어 원문에 대한 언해가 이루어졌다. 조선조 사역원(司譯院) 역관들의 중국어 학습 및 역과 한학서로서 이 책의 위치가 변함없이 공고했음을 알 수 있다. 사대와 교린 정책이 외교정책에 있어 국시(國是)였
학습서들이 사회에서 상용되는 한자를 선택 정리하였다는 점과 채택한 글자의 수량이 적절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동시에 體制나 그 내용에 있어서도 이미 상당한 수준을 갖추도록 발전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은 한자교육의 순서와 함께 그 구체적인 방법과 각 한년별 한자의 수량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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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학자 시라토리 쿠라키치는 메이지 시대에 <국학원 잡지>(4권 4호)에서 "사케를 한국어의 발효하는 모양을 나타낸 삭, 석과 비교하여 추정해 보면, 일본어의 사케는 이 삭과 발음이 같은 것이다"라고 하며 일본어로 술을 가리키는 '사케'가 한국어의 '삭다'에서 나온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 또한 일본어를 가르친 뒤 지리·역사·이화학 등의 보통학을 한국인에게 가르쳐 문명을 이해시키고 취득시키고자 하였다. 1894년 일본어학교라 개칭되어 1895년 관립 일어학교가 되었고 1906년 관립 한성일어학교로 분리 독립되어 1908년 관립 한성 외국어 학교로 통합되어서 일본부로 재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