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배경설화 분석
1.1. 설화의 서사구조
① 잣나무 이야기, 신충의 등관(벼슬을 하게 된 이야기)
② 신충의 괘관(벼슬을 그만 둔 이야기), 단속사 창건
③ 설화에 관련한 다른 기록
③-1 신충에 대한 다른 기록
③-2 단속사 창건에 대한 다른 기록
④ 일연의 신충에 대한 찬시
신충괘관 설화는 제
대성이 두 세상의 부모에게 효도하다(신문왕 대)
모량리(혹은 정운촌이라고도 쓴다)의 가난한 여인 경조(慶祖)에게 아이가 있었는데 머리가 크고 정수리가 평평하여 성과 같았으므로 이름을 대성(大城)이라 했다. 집이 군색하여 살아갈 수가 없어 부자 복안(福安)의 집에 가서 품팔이를 하고, 그 집에
원 가
<여어다복행제교인은>
을 중심으로
1. 출 전 : 삼국유사5권 피은 신충괘관조(信忠掛冠條)
2. 원 문
物叱乎栢史 (물질호복백사)
秋察尸不冬爾屋墮米 (추찰시부동이옥복타미)
汝於多行齊敎因隱 (여어다복행제교인은)
仰頓隱面矣改衣賜乎隱冬矣也 (양돈은면의개의사호은동의야)
月羅理影古理因潤
신충(信忠)이 737년(효성왕 1)에 지은 8구체 향가(鄕歌)로 원래는 10구체 형식이었다고 하나, 현재는 후구(後句)가 없는 8구체로 전한다. http://100.naver.com/100.nhn?docid=120096
【원가의 배경설화】
효성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어진 선비 신충과 더불어 궁정 잣나무 아래에서 바둑을 두곤 했다. 어느 날 왕이 신
Ⅰ. 신라시대 향가 원가의 작품배경
효성왕이 현사 신충과 더불어 궁정 잣나무 밑에서 바둑을 두더니, 일찍이 말하기를 후일에 만일 경을 잊으면 저 잣나무 같으리라하매 신충이 일어나 절하였다. 두어 달 지난 뒤에 왕이 즉위하여 공신에게 상을 줄 새 신충을 잊어버리고 쓰지 아니하였더니, 신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