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부민란의 배경
1894년의 동학농민전쟁은 조선 최대의 곡창지대인 전라도 고부군의 민란에서 발단하여 광범위한 지역에 걸친 농민봉기와 합류하여 일대 농민전쟁으로 발전하였다. 당시 고부군수는 민씨일파
와 결탁하고 있었던 척족 조씨(순조의 세자 익종의 부인이 조씨) 가문에 속한 조병갑이
사발통문은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기 전 혁명을 결의한 문서이다. 1893년 11월 전봉준, 송두호, 송대화 , 송국섭 , 최경선, 김도삼, 손여옥 등 20명은 송두호의 집에 모여 고부군수 조병갑을 효수하고 전주성을 거쳐 서울로 바로 쳐들어가자는 어마어마한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누가 주모자인지 모르게
사발통문 본래 ‘주모자가 누구임을 드러내지 않게 하기 위해서, 관계자의 성명을 둥글게 돌려 적은 통문’이란 의미의 보통명사임에도 이제는 ‘고부모의’만을 특정하게 뜻하는 고유명사로 굳어져 있다.
을 돌렸다. 이들은 고부성을 격파하고 군수 조병갑을 효수한다, 전주성을 함락하고 서울로 직
사발통문을 돌렸다. 이들은 '고부성을 격파하고 군수 조병갑을 효수한다', '전주성을 함락하고 서울로 직향한다'는 등 행동방침을 결정했다. 그러나 조병갑이 익산군수로 전임됨에 따라 사발통문결의는 보류하게 되었다. 전봉준은 1893년 12월, 60여 명의 고부농민을 거느리고 새로 온 고부군수 이은용에
저는 전자공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 세종시대의 통신수단을 알아보고 현대의 통신기술과 비교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이 주제를 선택하였습니다. 세종시대의 통신수단으로는 파발, 사발통문, 봉수가 있고 현대시대를 대표하는 통신으로는 gps와 핸드폰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그 중 봉화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