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栗谷)·석담(石潭), 시호 문성(文成), 강원도 강릉 출생이다. 사헌부 감찰을 지낸 원수(元秀)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사임당 신씨이다.1548년(명종 3) 진사시에 합격하고, 19세에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다가, 다음해 하산하여 성리학에 전념하였다. 22세에 성주목사 노경린(盧慶麟)의 딸과 혼인
퇴계ㆍ율곡 성리학의 정립
대부분이 재지 중소지주(在地中小地主) 출신이거나 향리(鄕吏) 출신인 고려의 신흥 사대부 계층은 북송(北宋) 이래의 성리학을 수용하여 당시 피폐해 있던 고려사회의 개혁을 위한 이념 및 철학적 배경 이론으로 활용하다가 공민왕(1351~1374년 재위)이 추진한 일련의 개혁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각각 5천원 지폐와 천원권 지폐에 새겨진 퇴계이황과 율곡이이 그만큼 그들의 사상이 우리사회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이 보고서 에서는 성리학에 대한 개념과 정의 및 퇴계이황과 율곡이이가 내세웠던 이기론 등 성리학 전반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이기론의 결합을 처음으로 시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주요 개념인 사단 칠정에 관한 제 규정이 이 논쟁에 이르러 비로소 개념적 명확성을 획득하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2) 이이의 생애
본관 덕수(德水), 자 숙헌(叔獻), 호 율곡(栗谷)·석담(石潭), 시호 문성(文成), 강원도 강릉 출생이다. 사헌
1. 레포트 저술 동기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는 16세기를 대표하는 사림이다. 흔히 퇴계를 영남학파, 율곡을 기호학파의 대표라 하여 경쟁 관계로 여기는데, 이는 퇴계의 영남학파가 동인 정파로, 율곡의 기호학파가 서인 정파로 전환되어 정쟁을 한 데서 생긴 오해이다. 이들은 35년의 나이 차이가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