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모죽지랑가」대한 연구들은 대단히 많은 편이다. 이 연구들은 그 논지에서 상당히 엇갈리고 있는데, 크게 향찰해독, 작품해석, 창작시기의 세 영역으로 정리할 수 있다. 향찰의 해독에서 보이는 난맥상은 앞으로 볼 향찰의 해독을 보면 이해가 간다. 그리고 이 해독들의 엇갈림으로 인해,
(2) 모죽지랑가의 탄생 시기에 관련된 논의
모죽지랑가에 대한 논의에서 의견이 크게 엇갈리는 부분은 창작시기에 관련된 추모시, 혹은 사모시로 주장되는 부분이다. 이작품은 많은 생략법을 통하여 시적 애매성을 형성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제부터는 모죽지랑가의 생전 창작설과 사후 창작설
Ⅰ. 신라 향가 모죽지랑가의 배경설화
이 노래는 삼국유사 권 2 효소왕에 죽지랑 조에 실려 있다. 술종공이 朔州都督使가 되어서 임소에 가는 길에 그 때는 삼한이 병란이 있는 때라, 기병 삼천으로 호송하였는데, 죽지령에 다다르니 웬 한 거사가 그 산 길을 평평하게 다스리고 있었다. 술종공은 탄복
창작의 정황을 따져 보아도 타당하리라 본다. 죽지랑의 낭도였던 득오가 모량부의 실권자인 익선에게 차출되어 심한 노역에 시달리는 중이다. 죽지랑의 낭도가 되어 지냈던 지난봄을 생각하면서 하루빨리 죽지랑에게로 돌아갈 날을 기다린다. 그런데 득오가 억류되어 있는 곳이 익선의 영토이다. 주변
모죽지랑가의 배경설화
第三十二孝昭王代 제 32대 효소왕 때
竹曼郞之從有得烏(一得谷)級干 죽만랑의 무리 가운데 득오 혹은 득곡이라는 급간이 있었다.
隸名於風流黃卷 풍류황권에 등록되어
追日仕進 날마다 출근하더니
隔旬日不見 열흘 동안 보이지 않았다.
郞喚其母ㆍ問爾子何在 죽만랑이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