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죽지랑가의 배경설화
第三十二孝昭王代 제 32대 효소왕 때
竹曼郞之從有得烏(一得谷)級干 죽만랑의 무리 가운데 득오 혹은 득곡이라는 급간이 있었다.
隸名於風流黃卷 풍류황권에 등록되어
追日仕進 날마다 출근하더니
隔旬日不見 열흘 동안 보이지 않았다.
郞喚其母ㆍ問爾子何在 죽만랑이 그
Ⅰ. 신라 향가 모죽지랑가의 배경설화
이 노래는 삼국유사 권 2 효소왕에 죽지랑 조에 실려 있다. 술종공이 朔州都督使가 되어서 임소에 가는 길에 그 때는 삼한이 병란이 있는 때라, 기병 삼천으로 호송하였는데, 죽지령에 다다르니 웬 한 거사가 그 산 길을 평평하게 다스리고 있었다. 술종공은 탄복
2. 제망매가의 해독
소창진평의 해독에서는 현대어형의 혼재 등 어설퍼 보이는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월명사 특유의 투명한 표기 덕택에 큰 테두리는 자리를 잡고 있다고 평할 수 있다. 후배 해독자들의 성과와의 거리가 가장 좁은 경우의 하나일 것이다. 물론 양주동에 와서 매우 말끔한 모습
오히려 천전리 서석의 그러한 기록이 있다는 것은 화랑세기의 사실로서의 가치를 증거하는 사료가 된다.
부군은 재위하고 있는 왕이 아들이 없을 때 , 왕위계승권을 지닌 아들에게 주어진 칭호이다. 갈문왕은 왕위 계승과 관련 없이 왕실에서 지위에 의해 부여되는 칭호이다. 따라서 두 칭호는 동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