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서 토끼눈 할아버지는 장운에게 물을 떠다주면 곡식을 주겠노라 약속하고, 다음 날 약속을 지킨 장운에게 곡식과 함께 본인이 가져온 글을 익혀오면 곡식을 더 주겠노라고 말한다. 이러한 장운과 토끼 눈 할아버지의 교류가 지속되며 장운은 빠르게 새로운 글을 익혀간다. 하지만 어느 날 누이 덕
가을밤에 노래 들으며 자전거 타면서 영화 주인공에 빙의되어 감성에 젖어있을 때, 날벌레 한 마리가 입 속으로 다이빙하는 것처럼. 삶 자체는 예기치 못한 일이 수시로 벌어진다. 그렇기에 불안한 게 당연한 것. 하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이상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다. 그 때 대처
남편이 있는 여인이 남편을 살리기 위해 들병이로 변모해 의도된 매춘을 하게 되는 비참한 실상을 다루었다. 그런데 <소낙비>에서는 이 같은 여성의 매춘이 남편들에 의해 사주되고, <정조>에서는 술 취한 주인에게 몸을 파는 행랑어멈과 그 대가로 돈을 받기를 원하는 남편이 나온다. 그러나 이들 작품
남과 비교하지 않고 사랑할 때 행복이 온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 자신에게 실망 아닌 실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러한 행복들을 그동안 익숙함에 무뎌져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나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당연하게
남을 속이거나 편법을 사용하는 경우를 많이 목격한다. 결과우선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에서는 우수한 결과를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원칙 위반은 묵인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얻은 부, 명예, 평판은 자격이 없는 상태에서 받은 사랑이기에 인간을 오히려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