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개요
고려시대에 국자감, 향교, 사학 등과 같은 교육기관이 설립되고, 과거제도가 시행되었던 것은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또한 이 제도들은 이러한 변화를 가속시키는 데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만일 고려시대에 이러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았다면, 유학교육이 교육적 전통
교육연감, 1971, 44)를 이루었다. 초기에는 학보(초등 정도의 교육기관)를 설치하고 다음으로 관리 양성을 위한 학원(별창학원)(고려사, 권74)을 설립하였으며 성종 대에 이르러 국자감(후기에 성균감 또는 성균관으로 개칭)의 창설과 향교의 전신인 12목의 설치 그리고 과거제도를 통해 유학 교육으로 교
시대. 즉, 수신의 도는 불교가 치국의 도는 유교가 지배.
- 통치이념을 유교가 채택되었다는 사실은 당시 교육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가짐. 유교적 국가로서 손색이 없도록 문물제도의 정비의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교육제도의 발전에 노력.
- 통일 신라와 달리 과거제도의 도입으로 관리를 선
교육이 실시된 것은 당시 금과의 관계가 복잡했던 시대적 요청이 있었고, 또한 송나라 국자감에 문무 양학(兩學)제도가 있었음을 참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무학교육은 문신들의 반대로 인종 때 폐지되고 말았다. 또한 예종 14년에는 국자감의 재정을 원활히 하기 위하여 국자감에 양현고(養賢庫)를 설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