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에 성리학이 들어온 것은 충렬왕을 호종(護從)하여 원(元)나라에 갔던 안향(安珦)이 《주자전서(朱子全書)》를 가져와 연구하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 후 성균관의 유학자들에게 수용되어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사상으로서 새로운 학풍을 이루게 되었다. 그 대표적 인물로 이색, 정몽주, 길
최근에야 발견되었는데 이러한 사실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새 작품이 발견될 수 있다는 可能性을 보여주는 현상으로서 매우 注目을 요하는 일이라 하겠다. 이제 이들 詩歌文學을 주도했던 주요 작가들을 들어보면 이조년, 길재, 정몽주, 변계량, 이황, 이이, 정극인, 정철, 박인로, 송순, 양사인 등이다.
고려왕조를 개혁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정도전 중심의 급진개혁파와 정몽주 중심의 온건개혁파가 그것이다.
두 세력은 낡은 고려왕조를 개혁하고자 하는 데는 의견을 같이 했지만, 그 방법에 있어 대립하였고, 결국 이방원에 의해 정몽주가 살해당하고,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으로 정권을 잡음으
고려 충숙왕 때의 우탁, 충혜왕 때의 이조년, 공민왕 때의 이존오 ∙ 길재 ∙ 원천석 ∙ 이색 · 정몽주, 조선 초기의 정도전 ∙ 변계량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고려말ㆍ조선 초의 유학자들이다. 초기의 시조작가가 당대의 쟁쟁한 성리학의 석학들이었다는 사실은 곧 시조가 형성되는
정몽주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 세력으로, 조선 왕조의 건국을 반대하는 유학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은 군신 간의 충성 관계를 강조하는 의리와 명분을 사회 안정의 기틀로 주장하였다.
이들은 정치적 입장에서만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학문 성향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정도전 계통의 유학자